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삼천세계의 까마귀를 죽이고 서방님과 늦잠을 자고 싶구나

 "⋯근래 매일같이 누군가를 죽이는 꿈을 꾼다. 깨어나서까지 불쾌한 감각이 생경한 꿈은 이전에도 자주 겪었지만 그것들과는 결이 다르더군. 칼로 온몸을 난도질하면서도,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⋯⋯."

 


 타카스기 신스케는 요즘 잠을 설치는 일이 잦다.

 스승의 목이 베이는 치욕의 온상을 눈 앞에서 보고 돌아온 후로는 몇 달 동안 악몽을 꾸었다지만, 적어도 그 이후로 그가 두 번 다시 악몽을 이유로 잠을 설치는 일은 없었다. 이 손으로 목을 조른 것은 누구인가? 여자였던 것 같기도 하고, 남자였던 것 같기도 하다. 피바닥에 누운 그 시체는 머리가 길었던 듯도 싶고, 아닌 것 같기도 하다. 칼이 몸을 관통할 때 고통스러워했던가? 그것도 알 수 없는 일이다. 더욱 기이한 것은, 그가 누군가를 죽인 후 죄책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. 스승을 구하겠답시고 전쟁터에 나가 처음으로 겪은 살인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으니까⋯⋯.

 그런데, 그 꿈에서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.

 

 

 

© 12:30 님

 

 

 그러나 타카스기 신스케는 불현듯, 오늘로 이 불쾌한 백일몽의 끝이 도래했음을 깨닫는다.

 이 검은 누구를 베고 지나갔는가? —오래 전 죽은 자신의 부하였던 여자.
 이 검으로 몇 번 그녀를 베었는가? —셀 수도 없이.
 그녀는 무슨 표정이었는가? —알 수 없다.
 그것을⋯⋯, 납득할 수 있는가? —결코.

 49일은 망자가 잊히기에 아직 이른 시간이다. 그러나⋯⋯, 우주에서 죽은 이름 모를 시체가 잊혀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. 당연한 일이다. 그는 그녀의 마지막 순간을 본 적도 없으며,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기이할 정도로 거의 부패하지 않은 어떤 여자의 시체만을 보았기 때문에.

 동서고금을 막론하여, 시체를 오래 붙들고 있는 것은 예의가 아니다. 귀병대로 인계된 그 여자의 시체는 채 이틀도 지나지 않아 화장되었으나, 마땅히 묻을 곳도 없던 탓에 여자의 뼛가루가 담긴 유골함은 주인 없는 그녀의 방에 조용히 머무르게 되었다. 그 뒤로는⋯⋯.

 애석하게도, 총독은 부하의 죽음을 일일히 기리지 않은 지 아주 오래 되었다. 과거에 머무르기에는 너무나도 바빴던 탓이고, 당장 자신들의 눈 앞에는 행성째로 세계를 끝내려 하는 아주 전형적인 악당이 있는 판국이었다.

 멈추지 않기로 약속했잖아. 그녀라면 분명 그리 말했을 터. 그런데 '그녀'가 누구였더라.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있었던 듯도 하고⋯.

 이제 타카스기 신스케는 49일동안 자신의 밤을 지배했던 악몽과 기묘한 위화감의 존재를 안다. 손에서부터 검신을 따라 흘러내리는 핏물, 바닥에는 피바다가, 제 아래에는 오래 전 죽었을 터인 그 여자가⋯⋯.

 놀랍도록 덤덤한 표정이다. 이렇게 될 줄은 진즉 알고 있었다는 표정으로. 마지막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겨우 자신을 기억해 낸 것이 조금도 원망스럽지 않다는 듯이⋯. 

 원하던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처럼 이노우에 쵸우는 말한다.
 나는 괜찮아. 당신은⋯⋯, 괜찮아?

 ⋯⋯마땅히 그래야지. 영원히 무너져 내리지 않겠다고 너와 언약한 바 있으니.

 그것이 타카스기 신스케가 49일간의 악몽에 고하는 종언이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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