01
하기 시, 야마구치쵸의 봉행을 지내고 있던 이노우에 가문은 차녀 이노우에 쵸우의 혼처를 두고 며칠을 고민하던 중이었다. 외모는 그리 아름답지 않고 오히려 볼품없다 할 정도였으나, 가문의 권세와 영향력 때문에 온갖 가문에서 혼서가 날아왔기 때문이었다. 그녀의 손윗형제인 코우야는 수많은 혼서 중 세 가문의 것만을 뽑아 쵸우에게 제비뽑기로 고르도록 했으며, 곧 타카스기 가문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에 혼처는 타카스기 가의 장남으로 정해졌다. 일가는 뛰어난 자를 사위로 얻었다며 기뻐했으나, 오직 그녀의 오빠만이 이 결혼을 달가워하지 않았다. 그 뒤로 혼담을 무마시킬 기회가 여럿 있었으나 어째서인지 이노우에 쵸우는 타카스기 가와의 결혼을 싫어하지 않았다.
네 남편 될 사람은 번의 눈 밖에 난 사람이다⋯⋯. 막부 타도니 뭐니, 그런 험악한 말을 지껄이고 다니는 사내인데 무섭지 않으니.
그 정도 기개를 가지신 분이라는 거죠⋯ 나쁘지만은 않은 분이신 듯한데요.
막부 관리들과 칼싸움을 벌이다가 눈도 멀어서 애꾸눈이라고 하던데.
그 정도로 하자품이라고 하기엔 저도 그리 용모가 곱지 않은 걸요⋯⋯.
02
타카스기 가문은 권세도 영향력도 남부럽지 않은 상급 무사 가문이었으나 유일한 골칫거리가 있다고 한다면 현 가주의 아들, 타카스기 신스케의 막나가는 행동 뿐이었다. 번교 명륜관에까지 보내면서 후계를 잇게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했으나, 5년만에 때려 치우고 요시다 쇼요라는 정체 모를 남자가 학교랍시고 세운 송하촌숙이라는 허무맹랑한 곳에 들어가 막부 타도니 뭐니를 외치고 있으니⋯⋯. 2년 전에 스승이 끌려가 사형당한 이후로는 더 막나가기 시작했다. 이대로 가다간 가문 전체가 장남 하나의 돌발행동 때문에 멸문당할지도 모르는 노릇, 아들을 날뛰지 못하게 막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그의 아버지는 반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이노우에 가문에 혼서를 넣었다. 몇 주 뒤 답신이 돌아왔기에 타카스기 가와 이노우에 가는 이듬해 2월에 혼약을 맺기로 결정하였다.
03
타카스기 신스케는 제 친우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30세 이전까지는 아내도 첩도 들이지 않겠다고 적어둔 바가 있었으나, 어째서인지 이노우에 가문과의 혼담은 무르지 않았다.
이듬해에 자네 가문과 이노우에 가문이 혼약을 맺을 거라는 소문을 들었네만.
들은 그대로다.
⋯작년에 내게 보낸 편지에는 서른이 넘을 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적지 않았나?
글쎄. 어디에 대고 맹세한 것도 아니고, 자네만 입을 다물면 될 것 같은데.
이노우에 가문의 장남과 자네 여동생들의 결혼이라면 몰라도, 그 집안의 막내딸은 볼품없고 추레한 외모라고 들었네.
⋯⋯사람 인두겁을 쓰고 짖어대는 막부의 개들보다야 낫겠지.
04
1860년 2월 9일, 타카스기 신스케와 이노우에 쵸우는 혼약을 맺었으며 둘의 나이는 각각 22세, 20세였다.
⋯⋯오라버니가 또 잔뜩 겁을 주셨구나. 눈 한 쪽이 없는 것만 빼면 용모는 수려한 사내인데도.
⋯생각했던 것만큼의 추녀는 아니군. 건강이 나쁘다는 게 한 눈에 보이는 것만 빼면.
05
결혼 당일, 아내와 첫날밤을 보낸 타카스기 신스케는 다음 날이 되자 번의 일로 집을 비웠다.
저는 신경쓰지 않으셔도 괜찮아요⋯⋯ 서방님께서 하려는 일이 얼마나 위험하고 가치 있는 대업인지는 잘 아는 걸요.
그리 말하니 마치 내가 그대를 아끼지 않겠다는 것처럼 들리는데.
⋯⋯아니었나요?
⋯⋯하.
06
신혼 초부터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던 그이지만, 결혼 4년 후 타카스기 신스케와 이노우에 쵸우는 우미(이후 타카스기 토우카)라는 딸아이를 얻게 되었다.
건강하게 태어나 줘서 다행이에요. 혹시라도, 이 아이가 잘못되는 게 아닐까 하고⋯⋯.
어쨌든 별 탈 없지 않았나. 그대만큼 현명하고 자상한 아이로 자란다면 좋을 것 같은데.
그렇다 한들⋯ 여식의 몸으로 가문을 이어받을 수는 없지 않나요.
⋯⋯내 부친이 꼭 그대처럼 말하더군. 짜증이 나서라도 난 이 아이에게 내 후대를 잇게 하겠다.
07
가정이 생기면 결혼 전보다야 잠잠해질 거라고 생각한 그의 부친과 다르게, 타카스기 신스케는 결혼 이후에 더 본격적으로 반막 활동을 시작했다. 두 차례의 전쟁 이후 막부에 쫓기는 신세가 되어 친우들과 함께 도망자 신세로 살아야 했던 그이지만, 자신이 가는 곳마다 아내 쵸우에게는 꼭 편지를 보내 무사함을 알렸다. 또한, 번으로부터 받은 돈으로 그녀에게 편지와 함께 비싼 허리띠나 서책, 장신구를 동봉하기도 했다.
다음 달에는 잠시 타국에 나갈 일이 생길 것 같다. ⋯원하는 물건이 있다면 사다 주지.
그런 건 아무래도 됐어요⋯ 선물보다는, 당신 사진을 한 장 받고 싶네요.
사진? ⋯⋯여차하면 영정으로 남겨두려 하는 건가.
그런 섬뜩한 소리를! ⋯⋯분명 그 곳은 위험하겠죠, 그러니까 그 사진을 보고 매일 서방님이 무사하기를 기도하고 싶어서⋯.
⋯그대답지 않게 퍽 귀여운 소리를 하는군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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